“리바이벌 234” – 서울에서 도쿄까지 2천km, 34일간의 여행

일본의 개신교 역사는 한국보다 25년 빠르다.
현재 한국의 개신교 복음화율은 20% 인데 일본은 o.4%에 불과하다.
한국 교회는 고난을 통해 부흥을 이루었고 그것은 하나님의 섭리였다.

일본은 도쿄에서 서울까지 기차와 뱃길로 죽음의 군대를 실어 날랐고 한국을 유린했다.
이제 한국 교회는 유린의 길을 거슬러 생명의 복음을 일본에 실어 나르기로 한다.

과거의 매듭을 풀고 새 시대를 여는 자유의 여행!
한국인과 일본인이 하나되어 떠나는 연합의 여행!
그리스도 안에서 국가의 벽을 허무는 용서의 여행!

자전거에 복음을 싣고,

우리는 서울에서 도쿄까지 용서를 위한 여행을 떠난다!

감독의 변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면 너희 천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시려니와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 (마6:14-15) 

용서는 기독교인들에게 있어 당연한 의무이다. 나는 전작 뷰티풀 차일드를 제작하며 피해자인 원주민들에게 가해자인 백인을 용서하라고 권면했고 그 행위는 선한 행위였다. 그러나 나는 제삼자의 입장과 당사자 입장이 다르다는 것을 몰랐다. 하나님께서는 최근 3번에 걸쳐 일본 방문을 통하여 일본을 용서하라고 말씀하셨다. 어려움이 몰려왔다.

제 3자의 입장에서는 용서하라는 권면이 쉬웠는데 일본과 당사자가 되어 용서하라는 하나님의 권면에 나는 튕겨져 나갔다. 아는 데 행할 수 없다는 것이 얼마나 비극인지 알게 되었다. 그런데 주님은 십자가에서 자신을 고난 가운데 밀어넣고 못 박고 창으로 찌르는 가해자들을 용서하셨다.

처음에 나는 이 영화를 제작하려고 할 때 용서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자료 조사를 하고 역사를 학습하고 현재 진행 중인 독도 문제, 교과서 왜곡 문제, 위안부 문제를 접하면서 점점 더 일본을 미워하고 증오하는 나의 내면과 직면해야 했다.

그래서 제목이 용서를 위한 여행이다. 용서해야 하지만 나의 시야가 좁고 나의 지식이 짧고 나의 경험이 미천해서 용서 못 할 가능성이 있다는 전제로 일본을 가는 거다. 일본의 근대화와 군국주의화 과정에서 일본은 도쿄에서 시모노세키까지 철도를 놓고 시모노세키에서 부산까지 뱃길을 열고 다시 부산에서 서울까지 철도를 놓은 다음 정치가들과 군인들과 상인들을 실어날라 조선을 유린했다. 그래서 나는 그 길을 거슬러 가며 지난 역사를 되돌아보기로 했다. 용서할 수 없는 그 길을 자전거 뒤에 먹을 것과 잘 것을 싣고 용서하지 못하는 정욕의 마음을 십자가에 못 박으며 고난의 순례의 여행을 할 것이다.

여행의 끝날에는 생각과 지식이 아닌 가슴과 마음으로 일본을 용서하게 되리라는 소망을 품고…

주님이 일본을 용서하신 것을 믿기에 한국인으로서는 용서할 수 없는 일본을 한국 교회가 용서하길 바라는 마음을 지니고 용서를 위한 여행을 떠난다.